아들의 결혼식 때 10억을 듬뿍 쥐어준 것은,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돈으로 서울 어디든 좋은 전세집 하나쯤은 거뜬히 얻을 수 있는 금액이었죠. 그렇게 아들을 분가시키고 나니, 저희 부부는 오랜만에 호젓한 시골집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그 작은 시골집은 오래된 나무와 푸른 숲에 둘러싸여,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평화로움을 자아냈습니다.
집안이 조용해지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아침에는 새소리를 들으며 차 한 잔을 즐기고, 저녁에는 남편과 함께 별을 바라보며 이야기 꽃을 피웠죠. 집안일도 크게 줄어들어, 이제는 빨래나 청소하는 일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있을까 말까 해서 부부만의 여유로운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주말마다 남편과 드라이브를 하며 시골의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새로운 취미가 되었죠.
하지만 이 평화도 잠시, 어느 날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기쁜 소식을 전했어요. 며느리가 임신했다며, 아이가 태어나면 한 달에 백만 원을 용돈으로 드릴 테니 저희가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며느리도 바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친정 어머니는 고인이 되셨다 보니, 그들은 정말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남편도 여전히 직장 생활에 종사하고 있어서, 손주를 돌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들은 만나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곧바로 약속 장소에서 만났죠. 아들은 많은 말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지만, 결국엔 저희가 직접 돌보거나 베이비시터 비용을 부담해달라는 이야기로 귀결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들에게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도 자신의 삶을 즐길 권리가 있고, 손주를 돌보는 일은 당연히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들과의 대화 후, 남편과 함께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둘만의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해 하며, 이제는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기로 했죠. 그 후로도 저희는 작은 시골집에서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 아들 내외가 방문하여 짧은 시간 동안 함께 보내지만, 저희의 결정은 변함이 없습니다.